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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치애인

by 의정부희동 2016. 7. 25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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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치애인

 

 

 

 

나에겐 백치애인이 있다.

 
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 지 모른다.

 

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 지를, 그리워하는 지를 그는 모른다.

 

별볼일 없이 우연히,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 봐서

 

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.

 

제 단골 다방에서 다방문이 열릴 때마다

 

불길 같은 애수의 눈을 쏟고 있는 지를 그는 모른다.

 

길거리에서 백호점에서 또는 버스 속에서 시장에서,

 

행여 어떤 곳에도 네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

 

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.

 

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.

 
그는 아무것도 모른다.

 

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,

 

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,

 

내게 한마디 말도 해오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이다.

 
바보 애인아.

 

너는 나를 떠난 그 어디서나 총명하고 과감하면서,

 

내게 와서 너는 백치가 되고 바보가 되는가.

 
그러나 나는 백치인 너를 사랑하며 바보인 너를 좋아한다.

 

우리가 불로 만나 타오를 수 없고 물로 만나 합쳐 흐를 수 없을 때,

 

너는 차라리 백치임이 다행이었을 것이다.

 

너는 그것을 알 것이다.


바보 애인아.

 

너는 그 허허로운 결과를 알고 먼저 네 마음을 돌처럼 굳혔는가.

 

그 돌 같은 침묵 속으로 네 감정을 가두어 두면서

 

스스로 너는 백치가 되어서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가.

 
바보 애인아.

 

세상은 날로 적막하여 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큰 과업처럼 야단스럽고

 

또한 그처럼도 못하는 자는 절로 바보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.

 

그래, 바보가 되자.

 

바보인 너를 내가 사랑하고 백치인 네 영혼에 나를 묻으리라.

 
바보 애인아.

 

거듭 부르는 나의 백치애인아.

 

 잠에 빠지고 그 마지막 순간에 너를 부르며

 

잠에서 깬 그 첫 여명의 밝음을 비벼 집고 너의 환상을 쫓는 것을 너는 모른다.

 

너는 너무 모른다.

 

정말이지 너는 바보, 백치인가.

 
그대 백치이다.

 

우리는 바보가 되자.

 

이 세상에 아주 제일가는 바보가 되어서 모르는 척하며 살자.

 

기억 속의 사람은 되지 말며 잊혀진 사람도 되지 말며

 

이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자.

 

우리가 언제 악수를 나누었으며 우리가 언제 마주 앉아 차를 마셨던가.

 

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치고

 

 지나가는 아무 상관없는 행인처럼

 

그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는 거다.

 
바보 애인아.

 

아무 상관없는 그런 관계에선 우리에게 결코 이별은 오지 않을 것이다.

 
너는 나의 애인이다. 백치 애인이다.

-
신달자 -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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